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단 바로가기



뉴스

  • 공지사항
  • 뉴스
  • 핸드볼가족소식
  • 보도자료
  • 연합회공지사항
  • 핸드볼학교공지사항

> 뉴스 > News

News

[기고] 남자국가대표, 아시아남자선수권대회 첫 출정기

작성자
Handballkorea
등록일
2018.01.05
조회수
92
첨부

우리나라 남자대표팀은 1977년 쿠웨이트에서 펼쳐진 제1회 아시아남자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며 처음으로 아시아선수권대회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다양한 환경적인 이유로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들을 겪은 것도 사실이다.


쿠웨이트는 같은 아시아 지역임에도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쿠웨이트로 가는 직항이 없어 홍콩과 바레인을 경유하여 쿠웨이트에 도착해야 했다. 비행기 여행 시간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지금은 상대국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거리만큼이나 서로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다. 따라서 중동과 극동이 서로의 실력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대회를 치러야 했다.

  

 

대회를 앞두고 우리나라를 상대로 작은 소동도 있었다. 대회조직위원회가 우리나라의 호칭과 대사관의 주소 및 전화번호를 잘못 적은 것. 세계핸드볼연맹에서도 ‘Republic of Korea'로 표기되는 우리나라를 ‘SOUTH KOREA’로 표기했고, 대사관의 주소와 전화번호 또한 북한대사관의 그것으로 오기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선수단은 대회조직위원회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정정을 요구했고, 결국 잘못된 부분들이 올바르게 고쳐지기에 이르렀다.


현지에서는 우리나라를 잘 몰라, 우리나라 선수들을 일본선수들로 착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신장과 체구가 작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이라크, 바레인, 중국 등을 물리치고 당당히 B1위가 되자, 경기 매너도 좋은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한국(‘코리라고 불렀다)이 제일이라며 친근함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경기장에 들어설 때면 관중들은 코리! 코리!’라고 외치며 호응해주었다.


먼 타국에서 치르는 경기였음에도 상당수의 교포들이 경기장을 찾아와 선수들을 응원했다. 당시 쿠웨이트에는 우리나라의 유수한 건설업자가 다수 진출한 상태였으며, 경기가 있을 때마다 건설업체 임직원들이 2~3시간의 원거리를 버스를 대절하여 응원 왔다. 500여 명에 달하는 그들의 응원은 국내경기장을 방불케 하고도 남았다. 경기 종료 후에 교민들은 승리의 기쁨을 함께 하며 선수들과 함께 애국가를 제창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조별 예선에서 이라크(28-20), 바레인(33-15)에 승리했으며 평균 신장이 10cm 이상 차이 났던 중국에게도 1점 차 승리를 거두었다. 대회 최장신(187cm)인 중국과 신장이 작은(177cm) 우리나라의 맞대결은 당시 매스컴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중국의 장신을 활용한 롱슛플레이를 효과적으로 봉쇄한 우리나라는 빠르고 조직적인 플레이로 중국을 괴롭힌 끝에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이어진 준결승에서 개최국인 쿠웨이트를 상대로 26-16로 승리한 우리나라는 우승 트로피를 놓고 당시 세계 랭킹 10위인 일본과 맞붙게 되었다. 주득점원인 김성헌 선수가 부상당한 악재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우리나라는 14-24로 패하며 아쉽게 초대 우승을 일본에 내줘야 했다.

댓글쓰기 (0개)

     *댓글은 최대 1000자 까지 입력가능하며, 욕설/비방글/상업적 홍보/스팸성 댓글은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