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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과 사람들] 스타와 함께 하는 핸드볼학교 차재경 교감

작성자
Handballkorea
등록일
2018.02.28
조회수
162
첨부

‘2018 스타와 함께 하는 핸드볼학교3월 10일 개학을 목표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2015년 첫 문을 연 핸드볼학교는 해가 거듭할수록 발전을 거듭하며 이제는 엄연한 대한핸드볼협회 저변확대의 주축 사업으로 성장했다. 핸드볼학교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헌신은 절대적이었다. 차재경 교감 또한 그 일원 중 하나였다. 올림픽 메달 후 은퇴와 함께 코트를 떠났던 그녀는 20여년이 지나 이제는 핸드볼학교 교감의 신분으로 핸드볼 알리기에 앞장서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키만 컸던 꺽다리, 올림픽메달리스트가 되다


차 교감은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바르셀로나올림픽 우승 당시 멤버다. 차 교감은 지금은 명맥이 끊겨 아쉬움을 주고 있지만, 전남 핸드볼의 산실이었던 백제여상(백제고) 출신이다. 백제여상은 특히 유명 골키퍼를 많이 배출했다. 바르셀로나올림픽에 함께 출전한 장리라(은퇴), 문향자(은퇴) 등도 백제여상 출신이다. 주희(서울 시청) 또한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 차 교감이 처음부터 골키퍼를 했던 것은 아니다. 핸드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키퍼를 보던 친구가 아파 대신 골문을 지키게 되었는데 잘 막았고 적성에도 잘 맞았다. “내가 또래에 비해 신장은 월등히 컸는데 민첩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성격상 욕심도 없다. 그것이 오히려 골키퍼라는 포지션과는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 차재경 이름 뒤에는 골키퍼라는 단어가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차 교감은 아직도 생생하다며 바르셀로나올림픽 당시 독일과의 준결승전에 대한 기억 하나를 전했다. “우리가 줄곧 리드해 나갔는데 경기 막판 시소게임으로 흐르며 승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독일에게 완벽한 기회가 왔다. 독일이 득점에 성공하면 동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상대방이 다이빙을 시도하기에 나는 주저앉으며 막으려 했다. 그런데 순간 공이 머리 위로 지나갔다. 아차 싶었다. 그런데 다행히 골대를 맞고 나왔다. 아마도 나의 동작을 보고 순간적으로 피해 던지려 했던 것 같다. 그 골이 들어가지 않으며 그대로 시간은 흘러 우리가 결승전에 진출했다.” 이미 25년 전의 기억이지만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한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10여년 만에 다시 찾은 핸드볼 코트

 

차 교감은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듬해인 1995년 코트를 떠났다. 지금으로서는 선수생활을 그만 두기에 이른 나이였지만, 당시는 핸드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자선수는 20대 중반이면 은퇴를 하곤 했다. 워낙 훈련도 힘들어 국제대회 우승 후 더 큰 상실감에 빠졌던 것도 있었다. 소속팀에서는 후배가 착실하게 성장하며 자리를 물려준 뒤였다. 주변의 모든 상황이 이제는 그만해도 되겠다싶게끔 만들었다. 그렇게 차 교감은 핸드볼선수로서 삶을 뒤로 하고 코트를 떠났다.


코트를 떠난 뒤에는 곧바로 결혼하며 한 가정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로서 삶을 살았다. 10여년을 핸드볼과는 인연을 끊고 지냈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자연스레 핸드볼선수였던 사실 또한 잊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핸드볼대회가 열린다며 느닷없이 인터넷중계 해설을 부탁한 것. 처음에는 의전이 부족하다고 해서, 오랜만에 선배와 후배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수락을 했는데 느닷없이 인터넷중계 해설이라니. 차 교감의 선수시절과는 용어도 많이 달라져 있었고, 선수들 이름 또한 전혀 몰랐다. 당연히 못한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주위에서 도와주겠다고 용기를 불어넣어주었고, 그렇게 주위의 유혹(?)에 넘어가 얼떨결에 핸드볼해설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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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 레전드에서 핸드볼 알리미로


차 교감은 요즘 선수 때 못지않게 바쁘게 생활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그리고 핸드볼학교 강사로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선수생활 은퇴 당시에는 지도자 말고는 딱히 핸드볼과 인연을 맺을 게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생활스포츠가 자리 잡으며 해야 할 일도 많아지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진 것 같다.” 핸드볼학교는 2015년부터 3년째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반응이 좋을지 몰랐다. 핸드볼학교를 추진한 임오경 감독 또한 한 명이 오더라도 즐겁게 가르치자며 설득했다. 그렇게 모두 반신반의하며 첫 학교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았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핸드볼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던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 내 아이처럼 기분이 좋았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선수생활 시절 얘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재미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핸드볼학교 교감을 맡게 되며 책임감 또한 막중해졌다. 올해도 교감을 맡아 운영해 나갈 예정이다. 올해 가장 달라지는 것은 서울 노원구에 분교를 만드는 것이다.노원구에서 스포츠클럽이 잘 운영되고 있어서 학교로 찾아오기 보다는 그곳에서 직접 가르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차 교감은 아직 장소 등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있어서 확정 단계는 아니지만 꼭 분교를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노원구에서 분교가 만들어진다면 더 확대하여 지방에서도 핸드볼학교를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고 전했다.


인터뷰 내내 차 교감은 미소 가득한 얼굴로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올림픽 금메달 순간보다, 나라에서 받은 연금이 통장에 찍히는 순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전했다.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핸드볼 환경에 뿌듯해 했고, 그런 환경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기분에 즐거워했다. 차 교감에게 허락된 인터뷰 시간은 30분 정도였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다음 회의를 위해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 교감은 인터뷰 말미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핸드볼학교가 잘 운영되면서 다른 종목에서 시기와 질투가 좀 있다. 그런데 다른 종목과 우리가 다른 것은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하나가 됐다는 것이다. 핸드볼이라는 동그란 원 안에 우리는 모여 하나가 됐고 융화됐다.” 

 

 

(본 콘텐츠는 핸드볼코리아 33호에 실린 인터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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